본문 바로가기

흑곰 코치의 Hot Issue !!!

‘전세 이민’ 빚내 올려주기 악순환

 

 

 

 

불과 5∼6년 전만 해도 자고 나면 뛰는 집값 때문에 속병을 앓는 사람들이 많았다. 일부는 영영 셋집살이를

 

벗어날 수 없을지 모른다는 조바심에 수억원을 대출받아 집을 장만했다. 이후 집값은 떨어졌고 원금·이자 상환에

 

허덕이는 그들에게 ‘하우스푸어’라는 딱지가 붙었다. 하우스푸어들의 고통을 지켜본 사람들이 이제는 집을

 

사지 않고 전세만 찾고 있다. 이로 인해 전셋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서울의 학군 좋은 곳의

 

평당 전세가격은 수도권 평균 평당 집값을 훌쩍 뛰어넘는다. 집만 없을 뿐 주거비 부담에 허리가 휘는 것은

 

‘전세푸어’도 하우스푸어 못지않다. 전셋값 때문에 결혼할 엄두도 못내는 예비 신혼부부들도 넘쳐난다.

◇신혼은 ‘렌트푸어 인생’ 서막=전세대출 이자 등을 내고 나면 생활비가 모자라는 세입자가 한둘이 아니다.

 

결혼을 앞둔 직장인 김지훈(33)씨도 마찬가지다. 300만원가량 월급을 받지만 대출이자, 할부금, 관리비를 내고

 

나면 저축은커녕 매달 생활비를 걱정해야 할 처지다. 지난여름 김씨는 서울 서대문구 천연동 아파트 76㎡(23평)를

 

1억9500만원에 전세를 얻었다. 부모의 도움을 받았지만 모자란 1억원은 대출을 받아야 했다. TV, 세탁기, 냉장고

 

등 가전제품도 할부로 사들였다.

김씨는 13일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결혼과 함께 렌트푸어 인생이 시작되는 것은 친구들도 마찬가지”라고

 

전했다.

김씨처럼 9월 이전에 전세를 얻은 사람은 그나마 형편이 낫다. 최근 한두 달 새 전셋값이 들썩이면서 요즘 서

 

울에서 2억원 이하 소형 아파트 전세 물건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예비 신혼부부들은 전세를 구하기 위해

 

서울 외곽으로 몰리고 있고, 이 때문에 일산 등 수도권 신도시 전셋값도 매매가격의 턱 밑까지 올라왔다.

지난 주말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동 한 부동산에서 만난 남녀 한 쌍은 소형 아파트 전세를 알아보고 있었다.

 

중개업자는 전세 물건이 없고 지금 사면 취득세 혜택도 볼 수 있다며 매매를 권유했다. 이들은 인터넷상 가격보다

 

전셋값이 높은 데다 물건마저 없다는 얘기에 실망하면서 발길을 돌렸다.

백석동 A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이 지역 79㎡(24평) 아파트 매매가가 1억8500만원으로 지난해와 비슷한데

 

전세가격은 1년 만에 2000만원 이상 뛰어 1억4000만원 정도”라며 “전세 물건이 거의 없어 이사 수요가 몰리는

 

겨울방학이 시작되면 가격은 더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강남권을 못 떠나는 전세푸어들=“집주인 전화 받기가 겁나요.” 용산구 이촌동 79㎡(24평) 아파트에 소위

 

 ‘반전세’를 살고 있는 직장인 이모(42)씨는 재계약을 앞두고 이렇게 말했다. 그는 2년 전 전세보증금이 부족해

 

보증금 5000만원에 매달 100만원을 내는 반전세살이를 시작했다. 하지만 월세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김씨는 최근 다시 전세를 알아보다 깜짝 놀랐다. 같은 면적의 인근 아파트 전세가격이 2년 전보다 6000만원이나

 

올랐기 때문이다. 서초구 잠원동 대림(637가구)·신반포1차(790가구) 아파트의 재건축 이주 수요가 강 건너

 

용산까지 영향을 미쳐 전세가격이 ‘부르는 게 값’인 상황이 된 것이다.

인근 서초·강남에서 전세를 못 구한 이주 예정자들이 용산구 이촌동과 서빙고동 등지로 몰리고 있다. 9월 이후

 

이 지역 전세가격은 2000만∼3000만원 올라 83㎡(25평)가 3억5000만원, 109㎡(33평)가 4억5000만원 정도에

 

거래되고 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이촌동 강촌아파트 앞에 몰려 있는 중개업소엔 인적이 뜸했다.

이촌동 S부동산 관계자는 “예약을 받을 정도로 전세 물량이 부족한 것을 알고 있어 직접 방문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물건이 나오는 족족 계약이 된다”고 설명했다.

지난여름부터 재건축에 따른 이주가 시작된 송파구 가락시영 아파트(6600가구) 인근 지역 전세 사정도 심각하다.

 

잠실동 잠실엘스 85㎡(26평)는 최근 4억500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이 지역 중개업소들도 전세 매물이 없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잠실동 C부동산 관계자는 “나온 물건도 없고 가격이 비싸 결국 송파에서 집을 못 구하고

 

경기도 성남 등으로 이사 가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집을 가지고 있어도 자녀 교육 문제로 ‘전세푸어’ 대열에 합류하는 경우도 있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김모(46)

 

부장은 최근 대치동 학원가에서 가까운 삼성동 아파트 135㎡(41평)를 7억원에 전세를 얻었다. 비슷한 규모의

 

상도동 집은 팔리지 않자 3억7000만원에 세를 주고, 은행에서 3억원가량 대출받아 전세금을 마련한 것이다.

 

김 부장은 이자로만 매달 130만원가량 부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