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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곰 코치의 Hot Issue !!!

실시간 계좌이체 전세계서 유일… 피싱 사기범엔 첨단수법 실험장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기술(IT) 인프라를 자랑하는 한국이 각종 첨단 피싱 사기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탄탄한 IT 인프라와 더불어 현금지급기와 자동이체 등에서 신속한 금융서비스를 갖췄다는 평가를 받아온

 

한국이 이들 첨단 시스템을 활용한 피싱 사기에 안성맞춤의 범죄환경을 조성해주고 있는 셈이다.

3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06년 6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확인된 보이스피싱, 파밍(Pharming),

 

피싱 사이트 등을 통한 피해건수는 4만51건에 피해금액은 4206억 원에 달한다.

 

올 들어서도 1∼5월에 1756건, 174억 원의 피해가 발생했다.

문제는 그 수법이 고학력 일반인들도 ‘아차’하며 당할 정도로 정교하고 치밀해지고 있다는 점.

 

금융위, 미래창조과학부, 경찰청, 금감원 등 4개 기관은 지난 3월에 이어 8월 29일에

 

두 번째로 ‘신·변종 전자금융사기 합동경보’를 발령하고 대국민 주의를 당부하고 나섰다.

국가기관, 금융사를 사칭해 자녀 납치 등의 수법을 통해 대포통장계좌로 자금을 빼돌리는 피싱 사기는

 

이젠 ‘고전적 수법’에 속할 정도다. 한 단계, 때론 몇 단계씩 진화해 귀금속 등 물품판매자의 정상계좌로

 

송금·이체해 물품을 받은 후 현금화하는 신·변종 피싱, 피싱 사이트로 유인해 보안카드번호 등을 빼내

 

예금을 가로채는 파밍, 가짜 팝업창을 띄워 보안카드 비밀번호 앞뒤 2자리를 빼내는 메모리해킹 등

 

혀를 내두를 만한 다양한 수법이 쓰이고 있다. 이용자 모르게 악성 애플리케이션(앱)을 설치하는 스미싱,

 

가짜 금융사 앱이나 청첩장·돌잔치를 사칭한 앱 등 신·변종 스미싱까지 나타났다.

‘전화를 통해 개인정보를 낚아 올린다’는 의미의 피싱은 1996∼1997년 미국에서 등장한 해킹기법이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일본은 지난 2008년 1∼8월에만 213억9000만 엔의 보이스피싱 범죄가 확인됐다.

 

대만과 처음 보이스피싱 범죄가 발생한 미국, 홍콩 등도 관련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보이스피싱 범죄의 ‘지존(?)’ 자리가 한국으로 옮겨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왜일까.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몇 가지를 꼽는다.

 

표면적으로는 중국과 대만계 폭력조직, 한국인이 낀 범죄 집단이 국내외에서 치밀한 점조직 형태로 암약함에 따라

 

범죄가 뿌리 뽑히지 않는 데 있다.

 

사기단이 이용하는 국제전화, 인터넷전화는 복잡한 수시경로로 인해 역추적도 쉽지 않다.

 

한 해 6만 건 이상으로 추정되는 대포통장(차명통장) 역시 범죄에 쓰인 후 곧바로 폐기되기 때문에 꼬리를

 

잡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특히 초일류 강국으로 꼽힐 만큼 급속히 성장한 한국의 IT 및 정보통신 인프라와 선진적인

 

금융시스템이 범죄자들의 구미를 당길 만큼 매력적인 배경이 됐다고 분석한다.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국내 스마트폰에 기반을 둔 모바일뱅킹 등록고객수는 3131만 명으로 전분기 대비 324만 명,

 

11.5% 증가했다.

 

이 기간 모바일뱅킹을 이용한 거래건수는 일일 평균 2056만 건, 1조3934억 원에 달한다.

 

또 전체 인터넷뱅킹 등록고객수는 9163만 명으로, 전분기 말보다 2.5%, 223만 명 늘어났다.

 

금융창구를 통한 입출금이나 자금이체 거래는 11.6%로, 나머지는 모두 비대면거래다.

 

전광석화 같은 금융환경의 변모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모바일 뱅킹 경험이 가장 많은 나라다. 실제로 글로벌 인사이트 컨설팅 회사인 TNS가 발표한

 

‘모바일 라이프 2012: M-커머스’에 따르면, 58개국 4만8000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글로벌 전체

 

모바일 뱅킹 사용률은 14%였다.

 

그중 한국은 모바일 뱅킹 서비스 이용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전체 모바일 이용자의 48%로

 

가장 사용 경험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미국 29%, 영국 31%, 프랑스 20%, 독일 19% 등의 선진국을 크게 상회하는 수치다.

현금지급기의 일일 계좌이체 및 현금인출한도의 경우 외국에 비해 고액이고 임의로 지정이 가능한 점 역시

 

범죄의 한 요인으로 지목된다.

 

보이스피싱 사기가 우리나라를 포함해 휴대전화와 은행 자동화기기 보급도가 우수한 나라를 중심으로

 

횡행하고 있는 점은 결코 간과할 대목이 아닌 셈이다.

 

실제 피싱 사기 가운데 파밍은 현재까지는 우리나라에서만 확인된 첨단 기법에 속한다.

금융위 관계자는 “외국 타행이체의 경우 오늘 이체하면 내일 돈이 송금될 정도로 우리와는 사정이 다르다”면서

 

“너무 빠르고 신속한 금융시스템의 편의성이 오히려 안전성에 독(毒)이 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윤해성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 대만 등에 비해 한국의 보이스피싱 사기 수법이

 

3, 4년 이상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면서 “그동안 정부대책이 한 박자씩 늘 늦게 나왔는데

 

서민들의 금융피해를 야기하는 만큼 정부 전담부서 가동이나 입법 대책이 더욱 체계적으로 작동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민종 기자 horizon@munhwa.com